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외로움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금방 이해할지도 모른다. 외로움이란 주위에 아름답다고 말할 만한 대상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아름답다고 말하니, 결국 그 무엇도 사랑하지 못할 때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리라. 하지만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길든 짧든 인생의 어떤 시기에 우리는 그 무엇도 사랑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간다. 뜻밖에도 목숨은 질기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건 전적인 외로움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외로움은 그 반대 경우다. 누구도 내게 아름답다고 말해주지 않는 순간, 다시 말해서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의 그 혼자라는 감정. 그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리고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고 말하는 건 성자가 아니라면 지독한 근시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의 얼굴은 젖빛 유리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처럼 흐릿하다. 근시안은 원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또렷한데 자기 눈에만 그렇게 희미하게 보이는 게 아닐까고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젖빛 유리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다. 원칙적으로 아름다운 얼굴은 하나도 없다. 나는 그다지 인간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미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세상이란 진즉에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데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래서 말이 안 되지만, 우리는 갑자기 그 흐릿한 젖빛 영상 속에서 누군가의 얼굴을 알아본다. 우리는 그 얼굴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처음 본 얼굴, 그런데도 아름다운 얼굴.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우리가 갑자기 누군가의 첫 얼굴을 알아보는 것처럼, 누군가의 첫 목소리를 알아듣거나 첫 냄새를 알아맡는 일. 그러기에는 목소리와 냄새의 세계는 너무나 명징하다. 명징한 세계에서 우리는 아무런 혼란을 느끼지 않는다. 아름다운 목소리는 세월이 흘러도 아름답게 들리고, 향기로운 냄새는 언제 맡더라도 향기롭다. 하지만 우리가 첫 눈에 알아본 얼굴은 그렇지 않다. 우린 모두 우리가 알아본 그 첫 얼굴과 사랑한다. 그 첫 얼굴과 만나는 일은 단 한 번뿐이다.
서로 첫 얼굴로 사랑하는 연인들은 모두 복되도다. 사랑에 빠지면, 그 순간부터 이 세상은 더없이 또렷하게 보인다. 세상의 끝까지 가봤기 때문에 이제 이해하지 못할 바가 하나도 없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 게 바로 사랑이다. 젖빛 유리로 바라보는 것처럼 흐릿하던 세계 속에서 아름다운 얼굴 하나가 툭 튀어나오는 듯한 느낌. 그리고 그 아름다운 얼굴을 통해 이 세상을 다시 보게 되는 경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생각하면 늘 영국 밴드 더 큐어(The Cure)의 노래 「Just Like Heaven」의 도입부가 생각난다. 드럼 소리는 심장이 뛰는 소리다. 들리는가? 그 다음은 그녀의 말. 우리가 사랑에 빠지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그런 말.
어떻게 하는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꺄악, 비명이 절로 나잖아.
왜 이렇게 웃음이 터지는 거지?
날 어떻게 한 거야?
말해줘. 그럼 약속할게.
널 따라갈게. 널 따라갈 거야.
아인슈타인이 가르쳐준 물리학의 법칙.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른다. 결과는 원인에 선행할 수 없다. 이 사실 때문에 시간여행은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의 자손이 선조가 되는 어떤 여자를 찾아가 지금 사랑하는 그 남자는 평생 그녀를 괴롭힐 것이니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하면서 결혼 자체를 무산시키는 일은, 그러니까 일어날 수 없다. 그건 원인이니까. 마찬가지로 그 첫 얼굴 때문에 우리는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에 빠진 뒤에는 그 첫 얼굴을 다시 만날 수는 없다. 목소리와 냄새와 달리 얼굴은 처음과 달라진다. 반드시. 그렇기 때문에 연인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말하는 모든 속삭임에는 슬픔이 배어있다.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그 얼굴은 곧 달라질 테니까.
그러므로 사랑은 지금 이 자리에서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뒤에는 감춰진 게 없다. 사랑은 둘 중 하나를 강요한다. 지금 사랑하든가, 사랑하지 않든가. 놔뒀다가 1년 뒤에 사랑할 수는 없다. 과거로 돌아가서 사랑할 수도 없다. 바로 지금 사랑할 수 있을 뿐이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사랑하는 모든 연인들은 슬프다. 그들은 늘 지금을 갈구하지만, 지금을 잡으려고 하면 그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사진을 찍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과거라는 사실이 저절로 밝혀지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은 지속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랑은 지금 이 순간의 일일 뿐이다. 순간순간, 파편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고양된 감정, 혹은 또렷해진 이미지일 뿐이다.
덕분에 다시 읽네,
답글삭제마침
사랑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기분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감사하게도 말이야.
그래도 죽지않고
이렇게 밤을 새워 (겨우 인터넷을 통해서지만) 사랑할 만한 것을 뒤지고 다니며 사네.
아참, 오늘은
오랜만에
이 글 쓴 작가로부터
안부를 묻는 메일이 와있어서 살맛이 좀 났지...
작성자가 댓글을 삭제했습니다.
답글삭제어렵지.
답글삭제어렵지..
ㅎㅎ
나휴대폰없이 지내서 연락하기가 어렵네ㅋ
뭐 나는 별 일없이 지내고 있어서 달리 해줄 말은 없지만ㅎ 너 얘기도 듣고
그냥 맛있는 밥같이 먹고싶다.
마침 이 작가 신간 출간기념으로 뭐 작가와의 만남 행사한다는데 신청해봐도 좋을 듯 하군ㅎㅎ
여기서 신청할 수 있구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culturedate&catseqno=37425228
일단 읽어보구 마음에 들면 말이야.ㅎㅎ
그 중 몇 편은 아래 링크에서 읽을 수 있어.
http://hook.hani.co.kr/archives/category/%EC%97%B0%EC%9E%AC%EC%B9%BC%EB%9F%BC/%EC%A0%95%ED%98%9C%EC%9C%A4%EC%9D%98-%E2%80%98%EC%97%AC%ED%96%89%EC%9D%98-%EA%B8%B0%EC%81%A8%E2%80%99
우왕 좋은 정보 감사 y.y
답글삭제저두 만나서 얘기하고 싶어요 -
연락 되는데로 만나요 !